문화재 1
[단양신라적성비]
돌위에 시간을 새기다 단양신라적성비
1978년의 새해가 밝은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어느겨울날, 단양에서
학술조사를 벌이던 조사팀은흙 묻은 신발을 털려고 돌부리를 찾다가 우연히
땅속깊숙이 묻힌 보물 하나를 발견했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이
끝나고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비석하나. 넓은 비면을 빼곡하게 채운 글자들
에서 왠지 모를 비범함이 느껴지는 보물의 정체는 바로 단양 신라적성비였다.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곳 적성을 점령했을 때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신라적성비에는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돌에 지나지 않아
그대로 묻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소중한 보배. 우리에게 역사의 단편을전하기
위해 오랜 세월 땅속에 잠들었다 깨어난 그존재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된다.
분류 : 석비 / 지정일 : 1979. 05. 22. / 시대 : 신라 진흥왕
문화재지정 국보 198호
[향산리삼층석탑]
주민들의 힘으로 다시 찾은 아름다움향산리삼층석탑
신라 19대 왕인 눌지왕(417~458) 때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묵호자는
향산사(香山寺)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 후 그가 열반하자 그 자리에 제자들이
석탑을 세우고 묵호자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사찰이
소실된 이후 그 터는 400여 년간 폐허로 남아 있고, 보물 제 405호
향산리삼층석탑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석탑 주변에 자기 조각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곳이 절터엿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5년경 탑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졋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분류 : 석탑 / 지정일 : 1964. 09. 03 / 시대 : 통일신라
문화재지정 보물 405호
[단양적성]
하늘 아래 길게 누운 단양적성
중앙고속도로에 자리한 상행선 단양 휴게소 너머로 산허리를 휘감으며
오르는 단양적성이 보인다. 사적 제 265호로 지정된 단양적성은
신라 진흥왕때 축성되어 길이 932m에 달하는 큰 성의 지키던 석성이다.
성내에서는 신라 및 백제계의 토기편, 고려조의 청자편과 와편이 발견되어
당시의 시대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멀리서 봐도 그 규모와 높이가 짐작되는
거대한 성벽을 언제 오르나 싶어 주춤하게 되지만, 산성의참모습을 체험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올라볼 것을 권유한다. 활처럼 휘어진 산성 위에서
바라보는 발아래 풍경은 다리품을 팔아가며 고생스럽게 오른
보람을 한 번에 안겨줄 만큼 멋진 절경을 자아낼 것이다.
분류 : 산성 / 지정일 : 1979. 07. 26 / 시대 : 신라 진흥왕
문화재지정 사적 265호
[영천리 측백수림]
길위에서 만난 숲 영천리 측백수림
단양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을 달리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정표
하나가 있다. 영천리 측백수림. 야트막한 산을 뒤덮은 울창한 나무들의 이름
이었다. 측백나무는 아름다운 생김새 때문에 주로 관상용으로 쓰이는데
주변환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주택과 마을 주변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주로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매포읍 영천리,
그것도 평범한 길 위에서 만나는 측백나무의 무리는 왠지 모르게 더 반갑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측백나무는 1~2m의 아담한 크기로 갈기 조팝나무 등
석회암지대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들과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
분류 : 자생지 / 지정일 : 1962. 12. 03
문화재지정 천연기념물 62호
[소백산 주목군락]
천년을 기다리다 소백산주목군락
주목(朱木)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고한다.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느라 거친 바람 맞아가며 살아서도 천 년을 살고,
죽어서도 천 년을 잠들지 못하는 걸까? 해발 1,200~1,400m 소백산 능선을
따라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목군락을 보니 마음에 끝없는 물음이
맴돈다. 주목은 조선시대 왕실의 가구 재료로 사용할 정도로 높은 상품가치를
인정받았으며 금표에 의해 보호되었기 때문에 일반인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다만 대갓집이나 궁궐의 정원수로만 이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곳의 주목은
바람과 눈의 영향으로 굴곡이 심한 가지의 모양이 매우 인상적이다.
분류 : 자생지 / 지정일 : 1973. 06. 20
문화재지정 천연기념물 244호
[노동동굴]
40~50도의 급경사를 이루는 동양최대의 수직동굴 노동동굴
지형적으로 험하고 소백산맥과 남한강을 끼고있는 경상도와 충청도의
연결지로서 예전에는 의병들의 은거지와 군포공장의 역할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동굴안에는 거대한 암수의 용 두마리가
정답게 어울린 모습의 「용두암」과 남녀의 인체의 각 부분을 닮은
모습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모든 석순이 고드름 형상을 이루고 있다.
서양 호박을 연상케 하는 「에밀레종」,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하며
세계최대인 프랑스의 다방 아르방동굴의 석순에 비교되는 「황금바위」
등과 특히 비가 온 뒤 거대한 폭포수가 흘러내려 극치를 자아내는
「지하백옥 폭포」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진흙을 부어 조각을 해 놓은 듯한
거대한 토굴 모습으로 투박한 시골 노인의 정취가 흠씬 묻어나며
30여 종의 자연 창조물이 깊고 깊은 자연동굴 속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이다.
분류 : 동굴 / 지정일 : 1979. 06. 18 / 시대 : 고생대
문화재지정 천연기념물 261호
[조자형가옥]
그리움으로 남는 집 조자형가옥
나지막한 뒷산에 몸을 기댄 채 몸을 웅크린 조자형 가옥은 오늘도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다. 오가는 이 누구라도 집안을 둘러보고가라는 듯. 조자형
가옥은 40평의 목조기와집으로 주변 자연과의조화가 돋보이는 가옥이다.
일제시대에는 최씨가, 한국전쟁 때는박씨가 주인이었는데 1958년
조성락 씨가 대폭 수리하고 1972년 조자형 씨가 가옥의 주인이 되었다.
분류 : 가옥 / 지정일 : 1984. 01. 10 / 시대 : 조선 영조
문화재지정 중요민속 문화재 145호